Page 23 - 4권_기가(GiGa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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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돈 있는 상태에서 시작한 것도 아니고, 돈도 없이 이것을 만들어서 다음
세대 사람들에게 정말 멋들어지고 당당하게 살아보라고 기부하기 위해서, 나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것을 개발을 했다. 이 기술이 다음 세대 누구에게도 소중한
자산이 되길 바라면서, 이 기술을 개발했는데 이것을 개발하는 장소가 선전 시와
위해 시였고, 지금 이 사진들은 선전에서 우리 연구소와 또 연구원들이 일하고 있
는 장면이다. 국내도 아니고 해외에서, 남의 나라 땅에서 말도 안 통하면서, 이렇
게 많은 인력이 일을 하고, 또 중국에서도 사람을 채용해서 일을 하면서 피와 땀
과 눈물이 옷에 흥건하다. 피가 흥건하게 고여 있는 것과 같다. 정말 힘들고 고통
스러운 가운데 이 회사를 만들었고 추진해 가고 있다.
이 회사로 말미암아 앞으로 많은 부가 대한민국에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다. 한국의 먹거리를 만들기 위해서, 해외에서 일하는 해외 연구소 임직원들의 모
습이다. 지금 봐도 가슴이 뭉클하고 뜨겁게 피가 끓어오른다. 새벽이면 사무실에
나가고 밤 12시가 넘어야 들어오고. 새벽 4시~5시에 사무실에 출근해서 하루 종
일 일하다가, 밤 10시가 넘어야 집으로 돌아올 때 지친 발걸음 속에서, 언젠가 다
음 세대 사람들이 이것을 가지고, 정말 이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
겠다는 심정으로, 남의 나라 땅에서 말도 안 통하는데 밤늦게 귀가하면서 피곤에
지친 모습으로 눈을 감고 대한민국의 내일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
한 노력과 헌신이 대한민국의 자산이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나의 바람이고, 직원
들과 일할 때 중국 정부에서 장관들과 많은 기술진들이 여러 번 찾아왔다. 그리고
제안을 했다. 우한대학교 총장 자리도 제안을 하고, 한국으로 얘기하면 카이스트
원장 자리 같은 것도 제안을 하고, 또 자금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지원해 줄 테니
귀화하라고 직원들 앞에서도 대화를 나누고 했다.
하지만 나는 한국인이고, 살아도 죽어도 한국인으로 살다가 죽겠다고 하는 결심
하에 호의는 고맙지만 저는 열심히 한중 간의 우호를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얘기
하고, 그리고 우리 연구원들과 함께 밤낮없이 노력을 했던 그런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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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연구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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