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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런 심부름을 하면서도 한 번도 싫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 당시 아버지의 권위는 우리 집에서는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감히 아버지에게 싫은 표정을 짓는 다 거나, 뜻을 거부하거나,
도전장을 낼 수 없는 그런 분위기였고,
아버지는 틈만 나면 우리에게 예법을 가르쳐 주시곤 했다.
우리 가족 3남 4녀 중에서도, 아버지 역시 할아버지처럼 특별히 나를 아껴 주셨
다. 할아버지에 이어서 아버지의 사랑도 나는 독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유는 모르지만, 아버지가 종종 어머니를 때리는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집에 들어가 보면 어머니의 눈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식구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우시면, 아버지는 어머니에
게 손찌검을 하셨다.
그럴 때면 나는 아버지가 무척이나 미웠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아버지는 내가 있을 때는 절대로 어머니에게 손찌검을 하시
는 적이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우면 ‘해결사’가 바로 나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버지는 내 앞에서 만큼은,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으
셨나 보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참 싫었다.
능력도 없고, 걸핏하면 어머니를 손찌검하고, 실속 없는 일만 하고, 자신보다도,
가족보다도, 친구와 이웃을 더 사랑하시는 그런 분이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거듭 다짐에 다짐 했다.
할아버지는 호탕하고, 사업도 잘 하셨고, 재력가 셨고, 가족을 끔찍이도 아끼셨
던 분이셨다. 그 반면에 아버지께서는 늘 병으로 한 평생을 사시다 돌아가셨다.
너무나 안타깝다. 요즘 폐병은 병 취급도 안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당시 폐병은
걸리면 거의 죽는 병으로 여기고 있는 때였다.(폐결핵 백신은 1950년대가 되어
QR
서야, 겨우 상용화가 시작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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