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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수혈로 근근이 생명을 연장해 가셨고, 핏 값으로, 병원 치료비로, 돈을
내다 보니 가족들의 살림살이는 오랜 병 구완으로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고생만 하시다가 결국은 돌아가셨다.
훈장 선생님이신 할아버지는 호탕하고, 사업도 잘 하셨고, 재력가 셨고,
가족을 끔찍이도 아끼셨던 분이셨다.
그 반면에 아버지께서는 무능력하고 자신과 가족보다는 친구와 이웃을 챙기고
늘 병으로 한 평생을 사시다 돌아가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나 내 자신이 어리석었다.
아버지인들 그렇게 무능력하고 싶어서 무능력 하셨을까?
얼마나 당신께서 하고자 하는 일이 안 되셨으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집에 계신 어머니께 화풀이를 하셨을까?
내가 너무 어려서 도와드리지 못했고,
또 그런 아버지의 쓰린 속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 내가 어른이 되어 생각해 보
니 무척이나 송구스럽다.
아버지는 내가 축구 선수가 되면서 내가 참여하는 축구 시합 장소마다 찾아 다니
시면서 숨어서 응원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셨다.
아버지는 늘 내게 미안해 하셨다.
비록 한 번도 미안하다는 말씀은 안 하셨지만, 난 가슴으로 그것을 느낄 수 있었
다.
당신께서 잘 먹이지도, 잘 입히지도 못하는데 운동 선수로 열심히 뛰는 내 모습이
내심 대견하셨는지, 당신께서는 언제나 나 하나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어떤
경기장에도 따라와서 나를 지켜 보셨다.
그러나 콜록거리고 남루하고 초라한 의복을 걸치신 아버지를 누가 알아보면 어
쩌나 싶어서, 나는 단 한 번도 친구들에게 우리 아버지라고 말하지 않았고, 오히
려 누가 우리 아버지라고 할 까봐 겁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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