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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체육지도자 총연합회 (KSLA)
(Korea Sports Leaders Association)
뒤를 돌아보며……
나는 초등학교 때 육성 회비를 면제받기 위해 운동을 했고,
수업을 빠지면서 운동만 하다 보니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한글도 제대로 몰랐다.
한문은 그저 내 이름 석 자만 겨우 쓸 줄 아는 정도였고,
다른 과목은 그 무엇도 배운 것이 없었다.
그래서 거의 전 과목 꼴찌였고,,,
성적표를 보면 온통 양, 가, 양, 가 여서 안동 권 가였던 나는
‘내가 권 가가 아니고 양 가인가’ 싶을 정도로 성적은 바닥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마지막 남긴 유언 때문에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숨을 거두시면서 내게 공부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 유언을 받
아들여 공부하려고 했지만 겨우 내 이름 석 자 쓸 정도의 수준 밖에 안되는 나에
게는 너무나도 고된 길이었다. 그렇지만 결국은 해 내었다.
피나는 노력끝에 독학으로 2년 만에 전교에서 20등 안에 드는 장학생이 되었다.
나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는 결코 실망시키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어머니
를 설득해서 어머니에게 단돈 만 원을 받아 객지 생활을 시작했다.
단 돈 만원으로 객지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우리 사회의 아픔을 내 스스로가 직접 겪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운동 선수들의 탈선이었다.
운동선수들은 여건상 거의 수업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운동만 하다 보니,
배운 것이 일반 학생보다 적다 보니, 일반 학생들에 비해 생각의 폭이 좁고,
운동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좁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운동만 했던 선수들이 계속해서 선수생활을 이어가지 못하고
중도에 탈락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하고 이렇다 할 수 있는 일이 직업이 없었다.
결국은 가진 것이 힘 밖에 없고, 마땅히 할 일도 없어서, 뒷골목 세계로 가거나
조직폭력배 생활을 하는 등,
우리 사회의 암적인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이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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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운동선수의 한 사람으로서 무척이나 가슴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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