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3 - 2권_단체(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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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을 맡아 운영하게 하였다.
그리고 밖으로는 체육지도자들이 봉사활동 차원에서 자연보호 캠페인·고아원·
양로원 · 지체부자유자 돕기와, IMF때 서울 25개 구청의 수 천명의 실직자와,
노숙자와, 부랑인들의 건강을 위해 도운 것은 내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하나의
큰 족적이라 자부한다.
젊음의 30년을 한국체육지도자총연합회를 위해 내주고 단돈 10원 한 푼 안 가져
오면서 체육지도자들이 스포츠센터를 잘 못 운영했다는 이유로 단체가 발이 묶여
버린 것이다. 한국체육지도자총연합회를 위해 오랫동안 헌신해 왔던 것 때문에
IMF 때 노숙자 부랑인을 돕는 본부장이 됐고 이 노숙자 부랑인을 돕는 일 들을
나중에 지오비를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이다.
나는 이러한 봉사 활동 사업을 진행하는 동안 비로소 지오비(GOB) 사업의 필요
성을 절감(切感) 하게 됐다.
한체연뿐 만 아니라 가난하고 힘든 사람도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하지 않겠
는가 이 말이다.
나는 한체연에서 밝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해왔다. 그런 노력들
이 노숙자 부랑인을 돕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특히, 노숙자들을 돕기 위하여 일부는 개인 사비로, 일부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의
도움 받아 서울시의 협조로 25개 구청 마다 널려 있던 노숙자, 부랑인을 도왔다.
이것은 죽을때까지 내 기억 속에 ‘오성아, 참 잘했다!’라고 남아있을 것이다.
이때 나는 체육지도자들에게는
축구, 배구, 탁구, 배드민턴 등 수많은 스포츠를
이들이 실직자와 부랑인들의 건강을 관리해주는 차원에서 지도하게 하였다.
그리고 나는 현장에서 운동처방이라는 과목으로 수천 명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강의를 했다. 이것은 그 어떤 일보다 보람이 있었던 일이었다.
그 밖에도 일반인들을 위한 수영 대회를,,,
사단법인 한체연(KSLA)이 매년 개최하여,
체육지도자들에게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의지를 갖게 해 주었고,
일반인들에게도 체육지도자들이 주최하는 대회에 참가하여 건강을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QR
한 번 대회를 열 때마다, 약 1,000명 이상의 일반 동호회 선수들이 참가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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